어떤 연구는 논문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실험실에서 태어난 기술이 세상에 직접 쓰이기를 바라는 순간, 연구자는 창업이라는 낯선 길 앞에 섭니다.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은 그 길을 함께 걷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그 현장 두 곳을 찾았습니다. 하나는 이미 법인을 세우고 투자자 앞에 선 기업들의 자리(5월 Selection Day), 다른 하나는 이제 막 아이템을 사업으로 바꾸기 시작한 예비 창업가들의 자리(7월 성과공유회)입니다.
창업 멘토링 프로그램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은 2024년부터 창업 단계에 맞춰 2개 Track으로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Track 1 예비 창업 및 창업 초기 연구자 대상. 국내 AC와 협력해 기업별 현황을 진단하고, 투자역량 강화 교육과 컨설팅으로 창업 준비를 지원합니다. (와이앤아처 액셀러레이터 협력) Track 2 창업 중반 이후 연구자 대상. 글로벌 AC와 협력해 연구책임자의 니즈에 맞춘 멘토링을 진행하며, 참여 기업의 글로벌 스케일업 기회를 제공합니다. (플러그앤플레이 액셀러레이터 협력)
시장의 문을 두드리다
법인을 세우고 투자자 앞에 서다 (5월 Track2 Selection Day)
5월에는 창업 멘토링 Track 2에서 기술창업사를 투자자분들과 연결하는 Selection Day 행사가 열렸습니다. 이 날 행사에서는 반도체, 바이오, 로봇,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의 8개 기업이 국내 대형 VC를 포함한 50여 개의 VC 앞에서 IR 피칭을 진행했습니다.
어떤 기업은 차세대 연결 기술(CXL)로 데이터센터의 메모리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고, 어떤 기업은 손상된 망막을 되살리는 치료제로 글로벌 투자자와 마주 앉았습니다. 실험실의 질문에서 출발한 연구가 이제 시장의 언어로 자신을 증명하는 자리였습니다.
이 자리에는 한발 앞서 창업을 경험한 선배도 있었습니다. 강연자로 나선 프로티나 윤태영 대표입니다. KAIST 교수로 연구하던 시절, 처음에는 IR이 낯설었지만 투자자를 만나 연구를 알리는 일이 기술을 개발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는 연구자가 흔히 빠지는 함정을 이렇게 짚었습니다.
“교수들은 ‘내가 세상을 한 번에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기업은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성과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가장 크게 반성한 지점으로는 기업의 본질을 꼽았습니다. 마일스톤을 이루면 다음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회사를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지만, 기업은 결국 투자가 아니라 돈을 버는 곳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연구자에서 창업가로 넘어온 그가 가장 절실하게 배운 대목이었습니다.
▲5월 Selection Day 현장
씨앗을 심는 사람들
아이템이 사업이 되기까지 (7월 Track1 성과공유회)
7월 Track 1 성과공유회 현장에는 창업 멘토링 Track 1까지의 과정을 마친 연구자들과 벤처기업 투자기관(VC)이 모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반도체 공정 소재(EUV PR)로 창업을 준비 중인 인하대학교 이진균 교수의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교수는 창업 멘토링 Track 1이 사업화 단계에서 마주한 어려움을 해결하고 VC들의 조언과 초기 스타트업의 생존 전략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스타트업을 만들며 겪는 모든 부담을 창업자가 혼자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기술 개발, 자금 확보, 사업 전략까지 각 분야에서 도움을 줄 조직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막연한 부담을 덜고 더 도전적인 목표를 세울 용기를 주었습니다.”
2024년부터 창업 멘토링 과정에 참여해 온 이진균 교수는, 현재 기술사업화에 필요한 PoC(Proof of Concept) 검증과 창업 파트너 찾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실험실의 연구가 세상에 쓰이는 기술이 되기까지, 그의 도전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7월 Track1성과공유회 현장
혼자 걷지 않은 길
골짜기를 함께 건너다
두 행사 모두, 문을 연 것은 김현수 삼성전자 미래기술육성센터장이었습니다. 그는 5월과 7월의 자리에서 나란히 창업 멘토링의 뜻을 전했습니다. 교수의 연구 제안서를 오래 들여다보다 보니,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를 하던 때와 겹쳐 보였다고 합니다. 될 것도 같고 안 될 것도 같지만, 곁에서 도우면 이룰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이 하려는 일은 결국 '동행'입니다. 도전적 혁신 연구를 통해 확보된 좋은 상용화 가능 기술이 시장의 벽 앞에서 멈추지 않도록, 연구과제 지원 외에도 기술창업까지 끝까지 함께 걷는 파트너가 되고자 합니다. 창업멘토링을 시작한 이래 지난 2년이 관계를 쌓아온 시간이었다면, 올해부터는 씨앗을 심는 이에게도,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도, 이 사업은 창업의 어느 단계에서든 곁에 있고자 합니다."
EDITOR'S NOTE
창업멘토링에 참여하여 법인을 세우고 시장에서 기술을 검증받고 있는 연구자의 시선으로 이번 호를 맺습니다. 먼저 그 길을 걸어본 사람이 지금 막 씨앗을 심는 후배들에게 건네는 이야기입니다.
칼럼 | 연구실에서 시작된 기술, 세상을 향한 첫걸음
박진형 교수 (성균관대학교)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연구책임자
2024/2025년 창업 멘토링 Track 1 참여
과제명 | 글림패틱 시스템의 노폐물 처리기능 향상을 위한 뇌청소기: 초음파 브레인 스위퍼
과제 기간 | 2022.6 ~ 2028.5
저는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의 지원을 받아 초음파로 뇌 속 노폐물의 배출을 촉진하는 Acoustic Brain Sweeper를 개발했습니다. 이 기술로 치매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는 확신에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관심은 기술 그 자체보다 “어떻게 시장에 진입할 것인가”, “누가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에 있었습니다.
잊지 못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A-Stream 투자 행사에서 한 일본 투자자에게 기술의 우수성을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지만, 투자자의 표정은 점점 지루해졌습니다. 좋은 기술을 연구자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과, 사업가로서 그 가치를 제안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중요한 것이 기술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임을 처음 실감했습니다.
그 뒤로도 “누가 구매하는가”, “보험은 어떻게 적용되는가”, “회사는 어떻게 살아남는가”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받았습니다.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비즈니스 모델은 조금씩 형태를 갖추었고, 실제 초기 투자 유치로도 이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투자 그 자체보다, 사업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는 점이 제게는 더 큰 의미였습니다.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의 창업 프로그램은 연구자의 눈높이에서 창업의 기본기를 반복해 익히고 사업적 사고방식을 체화하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특별했습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아이디어를 거듭 검증받는 과정은 제게 “이제 창업을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아직 저는 성공을 말할 단계가 아니기에 성공에 대한 조언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연구 결과가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면, 창업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보시길 바랍니다. 처음에는 낯설고 두렵지만, 진심을 가지고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좋은 투자자와 동료, 든든한 파트너를 만나게 됩니다. 저 역시 아직 그 길을 걷는 중이지만, 연구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던 배움과 성장을 매일 마주하고 있습니다.